총 게시물 :153건, 페이지 : 2/31
태풍의 영향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날, 드림스타트 역사탐방 프로그램에 아동인솔업무지원을 했다. 이동하는 버스 안은, 와이파이를 찾아 스마트폰 게임에 빠진 아이들에게 “배터리를 아껴라, 집에 전화해야지” 하는 고운 말과 “게임 그만 좀 해” 하는 인솔자의 단호한 외침으로 소란스러웠다. 그렇게 도착한 탐방지에서,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내리기 싫음을 표하고 “재미없어요”를 반복했다. 어차피 배울 건데 미리 알면 좋지 않냐 며, 어르고 달랜 보람 없이 눈으로 훑고 출구 찾기가 목적인 사람마냥 손에 스마트폰을 꼭 쥐고 탐방지를 벗어났다. 부셔버리고 싶은 스마트폰, 야속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측은해 진건 두 번째 탐방지에서 작은 놀이터를 마주하고였다. 그네 두 개, 미끄럼틀 하나와 철봉이 다인 정말 작은 놀이터였는데, 아이들은 그 바람에도 땀을 쫄쫄 흘리도록 뛰고 놀며 웃었다. 태풍이 얼마나 센지 옆 나라는 가로수가 넘어질 정도라는데, 우리아이들은 그 바람을 이기고 땀을 흘렸다. 먼발치에서 아이들을 보며, 함께 인솔하는 선생님께 여쭸다. “선생님, 쟤네 학교에 놀이터가 없었나?”사실 알고 보면, 저들과 놀아주는 것들이 스마트 폰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뛰어놀 시간이 마땅히 없다. 아침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라도 할라치면 밥 먹기도 바쁘고, 어영부영 등교하면 종일 학교공부를 하고, 하교하고는 곧장 학원·학습지에 지역아동센터나 방과 후 아카데미로 향한다.점심시간이다, 쉬는 시간이다, 방과 후 활동 시간은 노는 것 아니냐 혹은 공부시간이 아니지 않느냐는 논리는 맞지 않다. 학교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 속에는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자람에 필요한 모든 논리와 요소가 ‘학습’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러다 보면 어느새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귀가하고, 다 놀지 못한 것을 스마트폰에 기댈 밖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차분히 또는 질서정연함으로 그네 탈 순서를 기다렸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림에 반대방향으로 오르는 친구를 교사가 입 땔 것 없이 저들끼리 안전을 논하며 제지하였다. 몇 번해보면 알게 되는 것들, 그런데 해보지 않으면 모를 재미와 논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들의 휴대폰은 나와 선생님의 무릎과 손 위에 쌓여있었다. 자연스레 휴대폰과 멀어진 것이다. 근래 일어나는 아이들 문제를 여기서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약한 체력, 험한 말투와 분노조절 장애 등과 같은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우리는 그 모든 원인을 스마트폰 사용으로 귀결 시키지만, 그 이전에 뛰어놀지 못함이 원인이라 생각한다. 함께 부대끼는 것이 불쾌하지 않고, 충분한 에너지 소비를 통해 분노할 힘도 사그라들게 하는 것들이 놀이의 참 기능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한다. 아이들에게 ‘게임 좀 그만해라!’ 하던 어른들은 ‘스마트폰 게임’ 말고는 놀 시간도, 질서를 체득할 기회도 얻지 못한 아이들에게 사과해야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돌아보아야한다. 어른·아이 없이 그 나이에 맞는 ‘논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해야할 때이다.놀이 치료가 효과를 발휘하며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내 아이의 상담이 탐탁찮던 어느 부모님의 ‘이젠 돈까지 주고 놀란 말인가’ 하던 말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차례이다. 아이들이 잘 놀지 못하면 계속해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감히 ‘학원을 줄이세요.’ 할 수는 없다. 어쨌든 공부를 잘해야 선택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니까, 내 자식이 고생하지 않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인데 어떻게 강권하랴. 오늘 지역아동센터에서 공부 많이 했나를 묻고, 내 아이 공부 좀 많이 시켜달라는 부모님의 욕구에 어찌 마음껏 놀라고만 하겠나. 어느 체험프로그램 보다 학원·학습지 지원을 더 반기는 부모님들에게 어찌 놀아주시라 이야기 하겠는가. 그러나 아이들이 놀아야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알려 드릴 필요는 있다. 스마트 폰과 같은 스마트 기기는 아이들에게 공부할 도구가 아닐 수 밖에 없다.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매 순간 부모님들도 그런 사실을 직면하여야 한다. 내 아이가 잘 자라길 바란다면, 어느 늦은 시간이어도 함께 놀이터를 방문하는 건 어떨까.
17.09.20.올해 나이 31살,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식사를 대충 하고 음악 작업실로 향한다. 기타와 젬베 수업을 마친 후 새벽 2시가 넘도록 개인 앨범 준비를 하며 녹음실에 틀어박혀 작업을 한다.많은 음악인 들이 그러하듯 노래를 조금 잘한다는 이유로,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배우기 시작해서 음악을 하게 되었다는 건 흔한 스토리이다. 나도 그렇다.그렇게 시작한 음악으로 몇 해 전 창원MBC 라디로 에서 'SONG FOR YOU'란 코너에 캐스팅되어 1년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셀피쉬’란 밴드로 활동을 시작하여 지역인디밴드 세션으로 참여하기도하며 여러 활동을 하였다. 음향장비가 갖추어진 무대에 오르고 거리에서의 버스킹을 하며 정말 많이 노래했다.지금은 ‘DANO’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작곡가, 때로는 가수로 활동하며 경남의 창원, 마산, 진주부터 서울과 강원도 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다. 오늘 이야기 해보고 싶은 것은 무분별한 버스킹과 음악관련 이야기이다.20대 중후반 때의 일이다. 창원에서 제일 ‘핫’하다는 상남동 분수대에 같은 팀 멤버와 젬베, 기타를 가지고 가서 휴대용 앰프에 기타와 마이크를 연결하여 노래를 시작했다.그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연습했던 것을 들려주고 소통하는 것이 상당히 재밌었다. 거기다 지폐와 동전으로 가득찬 팁박스는 쏠쏠함도 느끼게 했다. 버스킹을 하며 재밌었던 만큼 다양한 에피소드가 생겨났다. 한창 노래를 하고 있을 때 젊은 20대 초반 친구들이 동전을 얼굴에 던지며 "마, 노래 한번 불러봐라"라며 다소 매너없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또 누군가 민원을 넣었는지 관할 지구대에서 경찰들이 나와 훈계를 하고 공연이 도중에 중지된 일도 있었다. 최근에 어느 뮤지션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 버스킹이 시끄럽다고 신고를 해서 경찰이 왔다고 했다. 그 뮤지션은 익명의 그 누군가에게 굉장히 화를 냈다. 나도 비슷하게 겪은 일이지만 그런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음악은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어느 가수가 와도 몇 시간 씩 노래를 한다면 누구나 지겨울 것이다.예전만 하더라도 경찰도 중지해달라고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하였는데 지금은 무분별한 버스킹으로 험한 분위기까지 연출되는 등 별의 별일이 많다고 한다.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을 거라는 게 참 부끄럽다.버스킹을 하며 MR을 틀고 노래를 하든 악기를 연주하며 공연을 하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건 안된다. 몇 년 전만해도 상남동분수대에서 버스킹을 하는 친구들은 어쿠스틱 사운드 음악을 중심으로 늦은 시간대는 볼륨을 낮추거나 앰프를 끄고 공연했다. 버스킹 문화가 활성화 된만큼 버스커들이 성숙해져야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서울홍대에서 이미 해왔던 거지만)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어 상남동을 갔었다. 7080아저씨버스커, MR버스커(MR을 틀고 노래하는 자를 칭함), 통기타 버스커 등 하나의 분수대를 둘러싸고 스피커 전쟁 중이었다. 몇 년 전에 활동 하였을 때는 서로의 버스킹 시간대를 피하거나 볼륨을 서로 조절하였다. 요즘은 버스커끼리도 서로 배려하지 않나 보다.MR을 틀고 버스킹을 하는 공연을 볼 때 면 많은 생각이 든다. 한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화면의 가사를 뚫어지게 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거리에 나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려주고 싶은 뮤지션이라면 최소한 보면대를 준비하여 가사집이나 휴대폰을 올려두고 부르든지 가사를 외워서 불러야 하지 않을까.“내가 낸데?!” 라는 마인드의 버스커, 부족한 가창력에 관객과 소통을 뒤로하고 타 버스커들과 전쟁 아닌 전쟁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본 탓일까, 그런 모습을 부정적으로 밖에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나에게 그들이 "내 취미인데 네가 무슨 상관인데?" 라고 하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건 그들의 취향이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난 앞으로 버스킹을 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서울을 왕래하며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게 약간은 부정된 느낌이다.나는 이제 작곡 공부 겸 작곡가로 데뷔하기 위해 서울로 간다. 최근에는 곡미팅을 했고 신인가수의 데뷔곡을 준비하고 있다. 유행이 너무도 빠르게 바뀌고 있고, 내가 만든 노래가 타 가수가 부르게 될 텐데, 약간은 쓸쓸 하기도 하다. 이제는 인디밴드에서 보컬과 기타가 아닌 작곡가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 나의 노래도 부르겠지만) 그들에게 훈계를 하거나 참견을 할 생각은 없다.나도 잘 몰랐던 세계였고 하지만 버스킹의 어떤 암묵적인 룰과 자기가 했던 행동들이 시민들에게나 동료 뮤지션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이야기를 하자면 뮤지션은 자기만의 창작물이 있어야 한다.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미술을 하든 어느 장르든 창작물이 없다는 것은 그냥 취미 일 뿐.
17.09.01.연일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모두가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다. 듣고 보는 일들 대부분이 치솟는 실업률이라든가 경기 침체 그리고 주부들의 마음을 오그라들게 하는, 천정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는 장바구니 물가 등 부정적인 경제소식이 목을 조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거기에다 전문가들의 진단도 워낙 다양하여 오히려 헛갈리기만 한다. 경제학자, 경제 평론가 그리고 정부의 경제 관료 등 수많은 명사가 다투어 의견을 펼치며 통계숫자를 열거하고 전문용어를 구사한다. 이중구조론, 산업유통론, 신자유주의, 신브레튼우즈 체제 등을 전개시킨다.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 것을 정치논리로 풀었기 때문에 파국을 초래했다고도 진단한다. 매우 학술적이다. 설득력 있게도 들린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새롭게 터득한 지식이라고는 없다. 오히려 알던 것마저 모르게 된 것도 있다.경제 전문가의 예측은 적중하지 않는다. 환율, 경제성장률, 실업률, 물가지수, 어느 것 하나 최근 4개월 사이에 맞아 떨어진 것이 없다. 물론 세계가 경제 파국으로 소용돌이치는 시대에 경제동향을 예상하는 것은 힘 드는 일이다. 정책 당국자는, 불안하고 당황할 만큼 우리 경제 구조가 허술하지 않다고 했다가 위기라고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누구는 경기를 회복하고 실업율을 낮추는데 1년 이상 또는 3년, 그보다 더 길게 예측하기도 한다. 도무지 갈필을 잡을 수가 없다. 물론 정부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념해야 할 것은 분명하게 단념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참으로 단념할 줄 아는 자만이 참으로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릇된 기상예보가 등반대원과 항해 인에게 조난의 화를 입히듯이 있으나마나 한, 그보다는 없는 편이 나은 경제 예보가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게 해서는 안 된다.경제에는 캄캄한 문외한에게도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히는 책이 있다. 존 K.갈브레이드의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지난 2백 년에 걸친 경제의 변화와 그에 따른 경제사상사를 각 시대의 역사와 관련지어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경제를 말하고 있는데 경제가 아닌 무슨 이야기책처럼 독자를 사로잡는다. 마르크스가 죽은 해에 케인즈가 태어났다. 케인즈는 발레리나와 결혼했다. 그는 ‘공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의 재앙은 처음에는 혀끝을, 나중에는 사상을 자신의 공적 입장에 순응시킨다는 것이다. 그 지위에 있게 되면 자기 형편에 좋은 말만하게 되는 것이 습관이다.’는 말로 변화의 주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 외에도 도박의 유행은 부자의 현시욕에서 비롯된다거나 영국의 삼림은 산업 혁명 이전에 연료로 거의 소진되었다. 그것이 산업혁명의 한 가지 원인이었다. 등 흥미진진한 화제가 가득하다. 경제론에는 당연히 정치, 문화, 과학기술, 패션, 국민성, 풍토, 지리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그런데 우리 국민은 오랜 세월을 지나치게 정치에만 열중해 왔다. 몇 백 년 전 왕조시대로부터 지금까지의 정치를 거듭거듭 글로 쓰고 라디오와 TV드라마로 끊임없이 재현하고 있다. 실로 기형적인 현상이다.이제 좀 더 경제를 이해하고 이야기해야 하겠다. 당면한 난국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경제는 더욱 절박한 문제로 덮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학이 아니다. 살아있는 경제, 그 자체이다. 높은 곳에서 저만치 아래를 내려다보며 설교하는 듯한 이론보다는 뒷골목과 변두리의 서민이 갖가지 애환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낼 줄 알아야 한다. 경제를 말하는 사람에게는 곤충학자와 같은 세밀한 눈이 요구된다. 시인과 같은 따뜻한 가슴을 가졌으면 한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으로서 알기 쉽고 이로운 경제론을 만나고 싶다.
17.08.24.돈, 조폐공사는 조합이 되는 단어다.그런데 조폐공사와 문화유산, 조금 어색한 단어 조합이다.문화나 관광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있는 품(品)이다.그럴 것 같기는 하다. 해석이 조금 어색하다.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8월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 경남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필자가 묻는 질문에 답하여 보자.몇 단계 힌트에서 정답이 나올지 스스로 체크해보자.<질문 1>1. 금년 7월 2일부터 7월12일까지 폴란드에서 개최되었다.2. 1972년 협약이 제정 167개국에 분포, 1073곳이 지정되어 있다.3. 전 세계가 공유, 보호 할 가치 있는 것, 한국에 12곳, 경남에 1곳이 있다.4. 이탈리아와 중국은 50개가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이다.5. 지정되고 나면 그 다음날 입구에 표지하나 세우고 사진찍고 끝이다<질문 2>1. 유네스코에서 2004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선정하기 시작하였다.2. 7개 분야로 나누어져 있으며 세계 116곳이 지정되어 있다.3. 한국은 6곳이 가입되어 있고 경남에도 1곳이 있다.4. 충분히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지자체마다 신청하려고 하여 어지럽다.질문1의 답은 세계문화유산이다.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가면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문화유산, 자연유산이다.유산이란 앞선 사람에게서 물려받아 현재 그 속에 살고 있으며 뒷 사람에게 물려 주어야 할 값으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인류 삶의 원천이자 공공의 자산이 아닐까 생각한다.문화와 풍습이 다르듯 유산의 형태도 지역별로 독특하면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유네스코가 1972년 지구상에 남아있는 문화와 자연의 유산 중 지역, 국가와 상관없이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을 발굴하고 보호, 보존하기 위하여 세계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을 체결하였다.1995년 한국은 해인사와 종묘, 석굴암 불국사를 시작으로 수원화성, 창덕궁, 고인돌과 경주, 제주, 조선왕릉, 안동하회마을, 남한산성, 백제역사 유적지 등 총 12곳이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질문2의 답은 유네스코 세계 창의도시이다.세계 창의도시 지정은 13년 전인 2004년부터 선정하기 시작하였다.뛰어난 창의성으로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세계의 도시 중에서 문학과 영화, 음악과 공예·민속예술, 디자인, 미디어예술, 음식 등 7개 분야로 구분심사를 통해 선정하고 있다.현재 전세계 120여개 도시가 7개 영역 창의도시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은 영화의 도시 부산, 미디어 예술의 도시 광주, 디자인 도시 서울, 공예의 도시 이천, 음식의 도시 전주, 그리고 경남통영이 음악의 도시로 지정되어 있다.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거나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가입되면 그 자체가 국가와 도시의 영광이다.필자는 공기업 관광본부장 근무 경험을 토대로 외국인 관광객을 국내에 유치하고 있는 관광사업을 하고 있다. 나의 모든 관광일정에는 해인사와 통영을 필수코스로 그리고 나머지 몇 곳을 선택코스로 제시한다. 전공필수를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이 안 되듯 해인사와 통영을 가지 않는다고 하면 계약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계약 파기율이 50%가 넘는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여행은 눈으로만 보지 않고 가슴과 머리가 함께 보아야 한다는 고집과 우리나라의 유산을 너무 사랑하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경남에도 이렇게 세계적인 유산과 창의도시가 있다. 아무리 자랑하여도 권위가 손색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것을 보유하여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니 자부심과 비교가 되랴.지정을 받고 등재를 하기 위해 예산과 인력 투입 당시의 열정 일부분만이라도 계속되어지길 바라고 있다. 경남 곳곳에 한국을, 세계를 대표할 문화 자연 유산도 많이 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해외에 경남을 알리는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이다. 경남은 주제와 명분, 실증이 뚜렷한 이 두 곳을 좀 더 홍보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며 이글을 마무리 한다.경남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한국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해인사!유네스코 지정 음악 창의도시 통영!이렇게 답하면 백점! 땡, 아닙니다. 80점 드립니다. 그럼 100점은?경남하면 생각나는 것은 “관심”입니다.
17.07.31.어느날 늦은 오후 창원 상남동에 위치해 있는 한 극장의 상영관. 영화가 시작되려면 아직도 한 10분 남짓 남았지만, 상영관 스크린 앞쪽 좌석에는 미리 도착해서 자리잡고 조용한 목소리로 소근되는 관객들 몇몇이 보인다. 상영관 스크린에서 가장 가까운 좌석에는 한 노부부의 푸근하면서 안정된 뒷모습이, 그리고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좌석에서 그리 멀지않은 열쪽엔 경쟁하듯 서로를 꽉 껴안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젋은 커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우연히도 이 한 공간에 나를 포함한 각각의 세대를 대표하는 익명의 사람들이 다함께 모이게 되었다. 잠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나는 상영관이라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간을 오감(五感)으로 동시에 공유하는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서로를 의식해가며 자신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일종의 거울처럼 서로서로 마주하는 듯한 묘한 육감(六感)을 느낀다. 상영관이라는 이 작은 공간이 현재 우리들이 시공을 초월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소통·교감해가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의 축소판인 것처럼.도시는 그곳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일상에서 발산해내는 다양한 감정과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 특히, 한정된 공간에 아주 조밀히 살아가고 있기에, 타인의 탄생·기쁨·슬픔·죽음 등을 각종 대중매체 및 주위 환경과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감정의 공기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자주 접하곤 한다. 공항 라운지에 있으면서 그곳을 지나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만들어 내는 다양한 형태·성격의 인간관계와 희노애락의 감정 혹은 아우리에 취해 잠시나마 흥분됨과 동시에 피곤함, 심지어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도시와 인간 – 시공(時空)을 초월한 소통·교감의 관계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도 개봉작 <킹덤 오브 헤븐>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중세 유럽인들의 제1차 십자군원정(1096-1099)이후 예루살렘 왕국 최초의 통치자로 군림했던 고드프리의 아들인 발리안은 험난한 여정을 거쳐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게된다. 예루살렘에 도착하고 나서 몇일 후 자신의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은 영지로 이동한 발리안은 그의 아버지가 머물렀던 성 안에 들어서자마자 벽 한켠에 ‘quod sumus, hoc eritis’라고 씌여진 한 라틴어 문구를 발견하고는 잠시나마 생각에 잠긴다.‘quod sumus, hoc eritis’를 한글로 번역하면 ‘현재의 우리가 곧 너희의 미래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의 현재가 축척된 과거의 결과이며, 현재가 곧 우리의 미래를 규정한다 라는 다층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시간·역사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가 그의 1961년도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정의하는 역사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하다. 즉, 에드워드 카(E. H. Carr)는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역사가와 사실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였으며, 이는 과거와 현재가 지속적인 상호관계를 통해 서로를 배워가고, 더욱더 깊게 이해시키는것이 바로 역사의 기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다시말해, 과거없는 현재와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도 관계성을 찾을 수 있다. ‘메멘토 모리’의 유래는 로마 공화정 시대까지 올라간다. 이 시기에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허락되는 개선식은 로마인으로써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었다. 그래서 개선장군은 얼굴을 붉게 칠하고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탄 ‘살아있는 신’이 된다. 그러나 전차 뒤에는 노예들이 같이 탑승하여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겼지만 언젠가 당신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지금 승리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패배와 죽음을 대비하라는 것이다.우리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공간·환경 그리고 그곳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서로 교감·소통하며 살아왔다는 ‘과거’를 망각한체 각자의 반복된 일상 혹은 ‘현재’를 살아가는 듯하다. 자연환경·기후변화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처해나가는 다양한 야생동·식물들처럼 말이다. 초인적인 힘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화려하게 내비치는 소수의 ‘보여주기식의 영웅’이 아닌 자신의 엄청한 능력을 인식하지 못한 체 일상을 그냥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다수의 ‘보이지 않은 작은 영웅들’처럼 말이다.사람들 없이 도시는 존재할 수 없고, 반대로 도시가 사라지게 되면 그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사람들 또한 정착을 위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나서기 위해 결국 또 다시 여기저기로 뿔뿔히 흩어져 지구 어딘가로 유유히 사라져 버리게 된다. 다시말해, 도시를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이 밀집된 공간에서 아주 다양한 형태의 삶들을 살아가는 사람과 그들의 다양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들의 다채로운 일상들이 다층적으로 침전되어 있는 도시 그 자체인 것이다. 심지어, 프랑스 문화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는 도시를 ‘인간이 만든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라고까지 평가한다. 건축가 승효상씨는 이탈로 칼비노의 저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도시의 진정한 진실·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도시의 진정한 가치는 이탈로 칼비노가 표현한 대로 “위대한 기념비적 건축에 있는 게 아니라 거리의 모퉁이, 창문의 창살, 계단의 난간, 가로등 기둥과 깃대, 그리고 부서지고 긁힌 온갖 흔적들”에 있다. 도시의 진실은 우리의 일상적 풍경에 놓여 있다. 이런 언설의 배경에는 도시가 익명성을 전제로 형성된 공동체라는 전제가 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헤어지는 도시의 물리적인 공간, 즉 광장과 공원, 거리, 건물들의 틈새, 그리고 디지털 가상 공간의 조직과 구성은 도시 공동체의 성패를 가르는 도시의 본질일 수밖에 없다’ (출처: http://about.seoulbiennale.org/en/intro). 도시와 인간 – 공존(共存)·공생(共生)의 커뮤니티영화상영이 끝나고 밖을 나서니 바깥하늘은 상영관과는 그리 차이가 없는 듯 어둑어둑하기만 하다. 창원광장쪽을 바라보니 원형(圓形)의 광장 테두리는 저녁 퇴근하는 수많은 차량불빛들의 띠로 둘러져 있다. 잠시나마, 끊임없이 오고 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이 발산해내는 기쁨, 흥분, 슬픔, 외로움 등 다양한 감정들로 가득찬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주변의 저녁풍경을 보는 듯하다.도시와 사람, 이 ‘둘’은 각자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서로 공존·공생한다. 이러한 공존·공생적 관계는 필시 ‘사랑’과 ‘사람’ 사이에서 우연처럼 형성되는 필연적 관계와도 비슷한 듯하다. 컴퓨터 키보드에 실수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치면 ‘사람’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실수로 ‘사람’이라는 단어를 치면 ‘사랑’이 되기도 하듯이,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우연 혹은 필연적으로 만들어 졌을 법한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사랑들’의 만남이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인 것처럼 말이다.이렇듯, 과거의 도시와 그곳을 살아갔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의 도시와 그곳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해 시공을 초월한 대화·소통을 끊임없이 해나가고, 이를 통해 각자의 과거를 되새기고, 각자의 현재를 살아가며, 각자의 미래를 꿈꾼다.
17.06.30.